Dohyun Gracia Shin

뮤지컬 레드북 (2017) 리뷰: 오스틴 로맨스 서사의 반란_브라운 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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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레드북 (2017) 리뷰: 오스틴 로맨스 서사의 반란_브라운 편

Gracia Shin 2019.09.14 03:08

이미지출처: https://m.sedaily.com/NewsVIew/1RVMIBURNT#_enliple

 

레드북

 

안나: 유리아

브라운: 박은석

로렐라이: 지현준

존슨: 김태한

도로시/바이올렛: 김국희

장예원 주민진 윤정열 권용국 허순미 김상균 이다정

 

 

뮤지컬 <레드북>: 오스틴 로맨스 서사의 반란_브라운 편

 

     <레드북>에는 안나도 있지만 브라운도 있다…! 비록 브라운은 관객들에게 있어 연애를 책으로 배운 울보 지질이 귀여운 변호사일지라도, 어디 한 번 당대의 시선에서 보아볼까. 브라운은 바이올렛 부인의 상속자이자 변호사라는 번듯한 직업으로 스스로와 가족을 책임질 수 있는 자수성가 청년이다. 중산층이자 신사 중의 신사, 그와 결혼하고 싶어 여자들은 줄을 섰다! 사실 브라운의 그 말이 허세가 아닐 가능성이 꽤 높다. 이 완벽한(!) 남성은 오스틴 로맨스 서사의 여느 남주인공들이 그렇듯 사회에서 바람직하게 여기는 남성상인 것이다. 마치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가 자신의 대저택 사람들과 영지 사람들에게 책임을 다하는 귀족 청년이었듯, 시간이 지나 더욱 빅토리아 시대에 가까워진 후대 오스틴 소설 <설득>의 웬트워스가 스스로 성공한 해군 장교가 되어 앤에게 돌아온 것처럼. 각각 그들이 그의 귀족 자산 혹은 직업(profession)으로 여주인공의 곤란한 상황을 도와주는 그 완벽한 멋짐. <레드북>의 브라운은 빅토리아 중기가 바람직하게 여겼던 중산층 남성이다. 결혼하여도 스스로와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어느 정도의 신분도 보장된 신사. 여기서 계속 언급되는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신사라는 점, 다른 하나는 자수성가형 변호사라는 점. 

 

신사 브라운 

 

     <레드북>에서 지속적으로 웃음포인트로 쓸 정도로 강조되는 사실은 브라운이 “신사”라는 점이다. <킹스맨>으로까지 이어지는 영국 신사의 계보. 그런데 그 영국신사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잉글리쉬 젠틀맨! 말로는 정말 많이 들어봤지만 그 신사라는 것, 대체 뭘까. <레드북>은 재미있게도 신사의 정의를 한 넘버 자체를 할애해서 꼼꼼히 설명한다. 

 

낮은 곳에 있는 이들에게 베풀라 

자신을 드러내지 마라 

죽음을 무릅쓰고 숙녀를 위해 그 몸을 던져라 

보상을 기대하지 말아라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예의를 갖춰라 

아무도 차별하지 말아라 

그 어떤 시련들이 닥쳐와도 끝까지 버틴다 

절대로 물러나지 마라 

방황하는 자들을 인도하는 희망의 나침반 

한 여자만을 향해 돌진하는 사랑의 기관차 

어리석은 자들을 응징하는 정의의 파수꾼 

혼탁한 이 세상 어둠을 밝히는 우리는

 이 시대 마지막 햇살 

 

     남을 위해주고 평화를 수호하는 정의의 파수꾼. 숙녀를 지키고 예의를 갖추는 사회의 선. 아서 왕으로 대표되는 영국의 기사도 정신을 물려받은 영국 전통 남성상의 계승자. 정말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번지르르하게 바람직한 이들이다. 하지만 <레드북>이 연출로 대놓고 꼬집듯, 가사를 조금만 뜯어봐도 신사? 이 웃기는 사람들! 하고 빅토리아 시대의 남성상을 돌려치고 있는 게 잘 보인다. 낮은 곳에 있는 자들에게 베푸는 자들은 사회의 높은 곳을 점하고 있는 자들이며,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숙녀를 위해 원하지도 않은 친절을 베풀곤 한다. 손수건을 돌려받은 숙녀가 감사는 커녕 콧방귀만 뀌고 가는 그 연출에서도 보이듯. 이들이 하지 않겠다고 하는 차별은 자신이 속해 있는 신사그룹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차별 없는 구휼을 하겠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자신들은 재산소유 투표 등 사회적 특권을 누리고 있지 않나!) 그들이 인도하고 응징한다는 것은 그들 자신이 인도하고 응징하는 주체라는 의미이며, 이는 달리 말하면 인도하는 방향과 응징의 기준을 본인들이 정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은 이들이 사회의 주를 쥐고 있다는 이야기다. 어둠을 밝히는 그들은 사회의 빛 쪽에 서있는 자들이며, 더 나아가 스스로를 “문명화”(civilized)된 주체로서 다른 이들을 계몽한다. 그들이 빛을 발하기에 그림자가 생긴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그림자는 <레드북>에서 말하는 나머지이다. 그들이 스스로를 빛으로 규정했기에 그림자 역시 규정되었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는 이들은 그림자로 분류된다. 예를 들어볼까. 여자, 거지, 창녀, 정신병자, 성소수자. 그들이 인도하거나, 그 인도에 따르지 않는다면 응징해야 할 존재들이다. (아, 사실 마음만 같아서는 더 떠들어서 19세기 고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이들이 빛을 쏘아 만들어낸 자들이 바로 하이드, 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과 같이 그림자로부터 귀환한 괴물들이니까…!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괴물을 두려워하고 그에 공격당하는 셈이다.) 

 

     또 눈에 띄는 연출은 신사 삼총사가 집착하는 특징들의 강조다. 폴짝폴짝 뛰어대는 스킵핑, 옷 매무새를 과장스레 다듬는 그 일련의 시퀀스. 똑같은 말을 좀 더 복잡하고 세련되게 하는 그 어투. 이와 같은 겉에 대한 집착. 이 집착을 보며 댄디즘이 생각나는 것은 너무 간 해석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댄디하다”라는 실생활 용어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듯, 댄디는 당대의 멋쟁이 신사들과 관련이 깊은 용어이다. 하지만 뒤에 “-이즘”이 붙었다… 고로 의미가 야악간 틀어지는데 두산백과의 도움을 약간 빌리자면 “세련된 복장과 몸가짐으로 일반사람에 대한 정신적 우월을 은연중에 과시하는 태도”가 댄디즘의 기본적 정의이다. 보들레르의 댄디즘이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져있는데 요는 미적 세련을 숭상하는 태도! 패션도 가장 최신, 최상으로. 몸가짐도 귀족적으로. 자신을 한 예술작품처럼 가꾸는 그 모습은 <도리안 그레이>에서 헨리가 도리안에게 가르친 정신이기도 하다. 

      

       신사 삼총사 역시 댄디즘에 집착하여 자신을 꾸며낸다. 그리고 이 겉 껍데기는 브라운이 안나에게 다가갈 수 없게 하는 장애물로 작용한다. 브라운이 친구들에게 자신이 그들의 범주 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레드북을 짓밟은 뒤, 어딘가 석연치는 않지만 겉모습에 다시금 집착하며 스킵핑으로 퇴장하는 그 장면. 정말 브라운을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변호사 브라운 

       브라운은 위에서 언급하였듯, 중산층 변호사이다. 이러한 직업은 보통 profession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는데, 남녀의 역할 구분이 분명했던 빅토리아 시대에서 남성이 이런 전문직을 갖는다는 것은 굉장히 바람직하고 중요한 의미였다. 안나 편에서 안나가 가정의 천사라는 역할 구분을 거부했다고 이야기했었는데, 브라운에게 주어진 역할은 그야말로 전문적 밥벌이인 셈이다. 산업이 점점 발전하면서 바깥 어른과 안사람이 구별 지어졌는데 그 구별을 굉장히 뚜렷이 지켰던 사회가 빅토리아 시대이다. 이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오스틴 로맨스 서사의 남주인공들의 멋있음도 시대를 다르게 타는 게 보이는데, 빅토리아 시대에 가까워진 오스틴의 마지막 소설인 <설득>의 경우, 남주인공 웬트워스가 이 전문적 직업을 이용하여 여주인공을 돕고 둘의 사랑이 이루어진다. 해군장교라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하여 앤의 친구인 사회경제적 곤란에 놓인 과부를 도와 그의 심성과 멋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브라운도 사실 이와 크게 다르지 않게 보인다. 그는 변호사라는 자신의 직업적 능력으로 존슨 부인을 돕고 안나 역시 돕는다. 하지만 <레드북>이 오스틴 로맨스 서사를 약간 비트는 지점은 브라운의 이 능력이 모든 것의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존슨 부인을 도울 때의 논리는 안나의 이야기에서 따온 논리이며, 마지막 재판에서 브라운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레드북과 안나가 사람들에게 전달한 이야기의 힘이다. 그리고 브라운 스스로도 이를 인정한다. 그가 멋있는 이유는 멋들어지게 스스로의 능력으로 재판을 이겨서가 아니다. 스스로의 결점, 그리고 자신이 도움을 받았다는 걸 인정하였기에 <레드북>에서 브라운은 멋진 남주인공으로 남는다. 

 

 

지질이 브라운? 

     <레드북>에서 재밌는 점 중 하나는 브라운이 마초적 남주인공이 아니라는 점. 사실 이는 그의 신분과 사회적 위치 때문일 수도 있으나, 빅토리아 남성성에 대한 코멘트로 읽어도 꽤나 즐거운 해석이 될 것 같다. (같은 선상에서 “딕” “존슨”과 거세공포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고 싶긴 하다. 브라운 편이라 이야기는 길게 하지 못 하겠지만, <제인 에어>에서 로체스터의 신체적 손상을 심리적 거세로 해석하는 해석도 있듯, 빅토리아 시대의 남성인물의 신체 손상은 심리적 거세로 읽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두 도시 이야기>에서 마담 드파르지가 “우뚝 선 채” 남성인물의 목을 자르는 장면에서도 이야기되곤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직접 존슨을…. (이하생략)) 

 

      우선 2막 첫 시작 “낡은 침대를 타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는 남성성 고취의 시도에 대한 꼬집기로 읽어볼 수 있다. “낡은 침대를 타고” 장면은 브라운의 성적 상상인 셈인데 여기서 표현하는 방식과 가사의 내용은 실제로 빅토리아 시대 문학에서 남성성 고취를 위해 자주 등장 했던 정글탐험(<인디아나 존스> 등으로 그 맥락이 이어져오는), 해적질, 오리엔탈리즘 등, 즉 다른 세계로의 모험이다. 그런데 <레드북>의 유쾌한 점은 브라운이 남성성을 고취하고 성적 해방을 느끼는 그 "모험의 세계"가 여자인 안나의 펜 끝에서 탄생하도록 비틀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로렐라이” 씬에서의 브라운의 울음도. 사회적으로 억눌러 온 남성의 울음이 안나와 만나 그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며 비로소 터져나오는 그 씬. 안나와 만나며 브라운은 점차 사회에서 지정한 빅토리아 시대의 남성의 고루한 껍데기를 벗기 시작한다. 

 

    물론 완전히 변하지는 않는다. 사회는 아직 그에게 강력히 작용하는 기제이고, 그는 완벽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일지 모른다. 마지막에 안나를 들어 안아 퇴장할 때 그의 걸음에 남아있는 스킵핑처럼. 그렇게 남아있는 그의 신사적 요소는 그를 여전히 뒤따를 것이다. 하지만, 헨리의 말처럼 안나와 만나 브라운은 분명 변했다. 그리고, 계속 변해갈 것이다. 인물들을 변하게 한 책 <레드북>. 그 도발적인 잡지는 그렇게 변화할 용기를 주는 붉은 책인 채 무대 구석에, 그리고 객석 어딘가에 자기 존재를 남긴다.

 

 

 

당신이 한 거에요,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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