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yun Gracia Shin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2015) 리뷰: 맞물리는 세 비극 본문

Theatre Reviews/Kor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2015) 리뷰: 맞물리는 세 비극

Gracia Shin 2019.09.14 03:14

이미지출처: imculture

 

카포네 트릴로지 

OLD MAN: 이석준

LADY: 김지현

YOUNG MAN: 윤나무

 

 

반복(혹은 복제), 공허한 희비극, 그리고 로키 [코미디]

 

  사람을 웃게 만드는 여러 요소 중에는 “반복”이란 게 있다. 여느 코미디 프로에서도 종종 “반복 개그”를 쓰고,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역시 반복적인 광대 짓으로 유쾌하고 공허한 메아리를 울리게 한 바가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 리뷰에서도 쓴 적이 있는데, 반복은 일종의 자기복제이며, 어떤 대상이든 복제가 될 경우 그 복제본은 원대상과 비교했을 때 어떤 식으로든 뒤틀림이 일어난다. 들뢰즈가 이야기한대로 세상에 완벽한 복제란 없기 때문이다. 산에서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라는 자기복제가 일어난다. 하지만 메아리는 되울리면 울릴수록 점점 변하고 결국은 공허하게 사라져간다.

 

  <카포네 트릴로지>의 -로키-도 마찬가지다. -로키-의 이야기 구조는 복제이다. <카포네 트릴로지> - 로키-는 관객인 우리 앞에 현재시제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로키-는 롤라와 두 광대에 의해 롤라의 기억 속의 사건을 재현, 혹은 복제해낸 이야기이다. 이야기 구조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주인공 롤라 킨 역시 복제 그 자체이다. 마치 장난의 신 로키가 여러 모습으로 자기복제를 하듯 롤라 역시 자신의 모습을 카멜레온처럼 바꾸며 그 복제된 거짓말들 사이에서 허무와 비극이 피어난다. 결국 롤라는 스스로를 죽임으로써 그 복제된 거짓말들의 체인, 돌고도는 렉싱턴 호텔 661호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이 죽음 자체도 위장 죽음이어서 그녀가 새로운 거짓말의 체인에 휘말려 들어간 것일지 "로키"답게 체인을 끊어낸 것일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또한, 희극인 -로키-는 70분간의 러닝타임 동안 끝없이 반복적인 행위로 웃음을 끌어낸다. 여러 사람들이 롤라의 방문을 두들기고, 롤라는 볼디에게 “ㅇㅇ 모르는구나”라며 반복적으로 놀리고. 롤라는 방문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행위를 반복한다. “자꾸 쓰러지고 자꾸 일어나고 자꾸 쓰러지고 자꾸 일어나[는]” 이 이야기에서 롤라는 웃음을 쥐어짜낸다. 이러한 반복된 행위는 복제된 행위기에 점점 다른 의미를 품어간다. 이 사이에 끼어들어간 또 다른 반복, “빨간 풍선”과 “롤라의 쇼”를 통해 희극이었던 -로키-는 비극으로 그 모습을 마치 로키처럼 바꾼다. 그렇기에 반복적인 행위로 비어져 나오던 웃음은 빨간 풍선의 비상과 함께 공허로 급격히 변모하며, 이 공허는 롤라의 마지막쇼를 통해 심화된다.

 

비극 트라이앵글에 비춰본 로키 [비극]

Incentive Moment(이야기의 시작점)- 니코와의 관계를 들키지 않기 위해 롤라는 데이비드의 머리를 창문으로 친다.

Peripeteia(반전)- 데이비드는 사실 죽지 않았다

Climax(클라이맥스)- 니코를 죽이기 위해 볼디가 로라의 방을 찾고, 롤라는 데이비드를 니코라 속여 볼디에게 넘긴다.

Catastrophe(참사)-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니코가 음독자살을 한다

Anagnorisis(깨달음)- 롤라는 자신이 데이비드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니코가 살 수도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Resolution(결말)- 로라는 시카고를 떠난다

 

 

 

숨겨진 진실 그 끝에서 오는 불안감, 루시퍼 [서스펜스]

 

  서스펜스는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관객의 목을 졸라오는 불안감이다. <카포네 트릴로지> –루시퍼-는 관객의 마음을 쫓는 서스펜스이자, 시카고의 수많은 잠재적 카포네들이 자아낸 이야기에 뒤쫓기는 닉 니티와 말린의 서스펜스이기도 하다.

 

닉 니티

  닉은 카포네가 지배하는 시카고에서 타락하지 않으려 발버둥치다 결국 타락해버린 루시퍼다. 카포네가 알카트라즈의 감옥으로 가기 전, 그는 분명 다른 인물이었고 카포네의 암흑을 감지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 점점 권력이 쥐여지면서, 그의 속삭임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그는 마치 루시퍼가 그러했듯 “오만”에 사로잡혀 점점 더 암흑에 물들어간다. 결정적인 전화를 받고 나갔다 온 어느 날, 뻘건 피를 온 몸에 묻히고 검은 옷으로 갈아입으며 그는 마치 변한 옷 색깔처럼 타락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인물들의 옷의 채도는 점점 추락하듯 낮아진다.

 

  이러한 닉은 말린을 바라보며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자신을 지속적으로 대면한다. 말린은 그에게 있어 일종의 “거울”이다. 말린은 변해가는 닉의 모습을 누구보다 민감하게 감지하고 그 반응을 닉에게 되돌려준다. 닉은 그녀에게서 비추어 보이는 타락한 자신의 모습에 극명한 거부감을 보이며 이를 거울인 말린에게 쏟아 붓는다. 하지만 결국 말린이 자신을 거부하게 되자 닉은 처음으로 그의 반쪽이자 거울인 말린이 바라보던 풍선을 본다. 그들의 추락한 채도와 달리 선명한 빨간색, 너무나 멀어 잡을 수 없는 그 풍선. 이를 보고 그는 서서히 타락하지 않으려 발버둥치던 자신이 결국 루시퍼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카포네의 도시 그리고 변해가는 그 자신, 그를 조여오던 그 서스펜스들이 결국 그를 집어삼켰다는 것 역시. 한 번 탈선했다고 깨달은 폭주열차는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었고 열차는 결국 벽에 자신을 처박게 된다.

 

말린

  말린을 보면 “인형”이란 단어가 생각난다. 빅토리아 시대 작품의 여성상을 일컫는 여러 말 중 하나. 물질을 퍼부으며 그녀를 애완동물처럼 아껴주는 닉 니티. 하지만 동시에 그녀를 가둬 두고 그의 말에 참견하지 못 하게 하는 닉 니티. 그에게 그녀는 아무것도 알아서는 안 되는 사랑스러운 “어린” 아내이다. 그에게 어떠한 위협이나 참견이 되지 않는 선을 지키는 그녀에게 무한정의 애정을 퍼붓는 그. 그 품 속의 아름다운 인형 말린. 그렇기에 닉은 자신의 어리고 예쁜 아내에게 그래서는 안 된다며 상냥하지만 엄한 훈계를 하고 자신의 의사와는 다른 언행을 보일 때는 “하지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말린은 그가 정해 놓은 영역인 661호 속에서 그의 “보호”를 받으며 갇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말린은 이러한 그의 “보호”에 숨 막혀 하면서도 익숙해진 모습을 보인다. 어항 속에 갇힌 물고기가 그 어항의 품속에서 벗어나 살 수 없듯, 말린도 그러하다. “난 당신 품에서 숨 쉴 때 가장 편해.”라는 말린의 말.

 

  그렇기에 말린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닉에게, 그리고 그녀의 주변을 소리 없이 맴도는 카포네의 공기에 목을 졸라오는 서스펜스를 느낀다. 그리고 닉의 “보호”가 그녀가 감지해오던 “위협”으로 변모할 때 이 서스펜스는 그녀 앞에 모습을 드러내 그녀를 집어삼킨다.

 

비극 트라이앵글에 비춰본 루시퍼

Incentive Moment(이야기의 시작점)- 카포네의 조직을 관리하던 닉은 카포네의 체포 이후 조직을 지탱하기 위해 카포네 대신 실무를 맡고, 이 과정에서 조조와 갈등을 빚는다.

Peripeteia(반전)- 닉과 말린이 조조가 아닌 조안의 아이들만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Climax(클라이맥스)- 말린이 닉을 거부하고 둘은 큰 다툼을 벌이며 풍선이 터진다.

Anagnorisis(깨달음)- 닉은 솟아오르는 풍선들을 보며 자신은 결국 일상에 다가가기엔 너무 멀어져 버린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Catastrophe(참사)- 아이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찾아온 마이클과의 몸싸움 중 닉은 마이클이 발사한 총에 맞고 비상계단에 굴러 떨어져 죽는다.

Resolution(결말)- 말린은 다시 자신의 가족에게 돌아간다.

 

 

 

감정을 배제한, 그와 동시에 감정이 끓어 넘치는 빈디치 [하드보일드]

 

  <카포네 트릴로지> –빈디치-는 카포네 트릴로지 중 유일하게 주인공의 건조한 내레이션을 통해 진행되는 극이다. 이는 빈디치가 극중 그의 감정을 최대한 잘라낼 수 있도록 돕는 장치가 된다. –빈디치-는 복수의 칼날을 꽂아 넣기 위해 누구보다도 감정을 배제시키는 두 캐릭터를 그린다. 감정이 스며들면 그들의 복수는 무디어지기에 그들은 그렇게 감정을 퍼석하게 건조 시켜 잘라낸다.

 

  그 둘과는 다른 이유로 두스 역시 자신의 감정을 배제시킨다. 카포네가 지배하는 시카고에서 스스로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욕정이 꿈틀대는 감정의 모자를 쓴 잭 나이트와 이성의 모자를 쓴 프랭크 두스를 나누어 놓는 것이었다.

 

  프랭크가 감정이 흘러 넘치는 잭이 되어 661호에 발을 디뎠을 때 그는 버석해진 빈디치와 루시의 사냥감이 되어 혀에 실이 꿰여 매달린다. (이는 마치 낚시 끈에 매달린 사냥감, 혹은 올가미에 얽혀 허공에 매달린 사냥감을 연상시킨다.) 이후 그는 이성적인 말은 한 마디도 하지 못 한 채 눈물과 침으로 축축히 젖은 감정들을 토해내기에 급급하다.

 

  루시 역시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며 빈디치를 배신한다. 감정을 배제한 하드보일드, 너무 익혀 단단히 삶아진 계란에 부글부글 끓는 감정이 부어진다. 다 삼켜내지 못 한 그들의 감정은 흘러 넘치고 극은 파멸로 치닫는다.

 

비극 트라이앵글에 비춰본 빈디치

Incentive Moment(이야기의 시작점)- 빈디치는 그레이스의 복수를 하기 위해 두스의 딸 루시와 함께 두스에게의 복수를 획책한다.

Peripeteia(반전)- 루시는 자신이 빈디치를 이용했었고 그레이스는 빈디치를 위해 두스에게 성상납을 한 것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Climax(클라이맥스)- 반전과 클라이맥스가 동일.

Anagnorisis(깨달음)- 빈디치는 자신이 루시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혹은 인정한다).

Catastrophe(참사)- 빈디치는 루시를 쏘아 죽이고 두스를 살려 둔다.

Resolution(결말)- 빈디치가 자살하여 661호에서 벗어난다.

 

 

 

세 비극이 맞물려 돌아가는 <카포네 트릴로지>

 

  <카포네 트릴로지>-빈디치-에서는 –로키-와 –루시퍼-의 이야기가 뒤엉켜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로키-와 –루시퍼-가 이 사건에 드러날 정도로 치명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로키-와 –루시퍼-의 두 주인공은 시카고의 암흑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인 반면 –빈디치-의 주인공은 마치 공룡처럼 세상에 단 하나 남은 정의이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왜 두 극은 –빈디치- 안에 드러나야 했고 빈디치는 롤라 그리고 닉 니티와 달라야 했을까.

 

  이는 세 극이 독립적인 동시에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이 비극의 트릴로지가 –로키-와 –루시퍼-에서 끝났다면 <카포네 트릴로지>가 보여주고자 하는 퍼져 나가는 폭력성은 도중에 차단된다. 이런 폭력이 “일어날 가능성이 충만할지도 모르는” 쇼걸 및 조직원에게 일어나는 것과 정의를 수호하고자 했던 말단 형사에게 일어나는 것의 사이의 간극은 존재한다. 날름거리며 공기 속에 숨어 흐르는 카포네의 폭력이 대부분의 관객과 같은 평범한 이의 일상에 전염되었을 때, 폭력의 위협성은 더욱 깊숙이 들어온다. 거짓과 타락의 폭력이 개인을 잠식해 복수의 화신으로 변모하게 하는 시카고, 카포네의 도시. 이 파멸의 도시에서 안티히어로들의 빨간 풍선은 하늘로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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