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yun Gracia Shin

가무극 꾿빠이 이상 (2017) 리뷰: 21세기에서 맞이하다, 꾿빠이 이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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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극 꾿빠이 이상 (2017) 리뷰: 21세기에서 맞이하다, 꾿빠이 이상

Gracia Shin 2019.09.14 03:19

이미지 출처: 서울예술단 블로그

 

 

들어가며

 익숙하지 않은 로비에서 정신없이 허겁지겁 손을 내밀어 부조봉투를 받는다휘 둘러 사람들의 부조봉투를 보니 저마다 다른 이름이 다른 한자로 쓰여 있다나의 첫날 봉투에는 以上이다그리고 둘째 날 봉투에는 趙宇植이다로비 안을 들어가니 사람들이 저마다 뭉쳐있다짐을 맡기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도 있다그 사이에서 나는 하나의 개인으로 유영하며 사람들을 관찰한다한쪽 구석에서는 금홍(박혜정 단원)이 반죽을 하고 있다사람들이 빙 둘러 서서 금홍을 바라본다탁 하는 소리가 로비에 울려 리듬이 되고 로비의 무언가 정다운 음악과 섞여든다다른 한쪽에서는 박태원(정지만 단원)이 관객과 도박 놀음을 하고 있다장난스레 접히는 눈매와 입초리가 관객의 마음을 허물어놓는다다른 한쪽에서는 김환기(유승현 단원)가 사람의 유무에 아랑곳 않고 저만의 작품을 만들고 있다삐뚤빼뚤 파란선이 종이 항아리를 서툴게 감싸고 있다나는 이런 군상을 구경하기도 하고 관객들의 대화를 건너 듣기도 하며 로비를 카메라에 포착하기도 한다사람들의 눈이 저마다 다르게 빛나고 있다어떤 이는 기대로 빛나는데어떤 이는 무섬증이 드는지 검은자가 소용돌이친다장례식을 알리듯 종이 뎅그렁 두어 번 울린다그리고 사람들은 우물쭈물 길게 줄을 선다제각각 다른 일을 하던 사람들이 하나의 획이 되어 시끌시끌저마다 다른 소리로 떠들지만 소리는 웅성이며 하나로 합쳐진다그리고 아가리를 벌린 길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공간에 몰리자 기대감과 무섬증은 서로를 집어삼킬 듯 섞여들어 관객들의 얼굴 위에 존재감을 칠한다.

 

어느 가을날, 서울예술단의 신작 <꾿빠이, 이상>의 로비 스케치다. 개막도 전부터, 서울예술단의 <꾿빠이, 이상>은 연극뮤지컬 매니아층을 기대하게도 하고 겁먹게도 했다. 이머시브 씨어터? 19세 미만 관람 불가?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는 자유석? 관객참여를 많이 하지 않는 관객 참여형 공연? 어떠한 설명도 예비관객층을 술렁이게 했다. 공연이 개막하고 공연장에 들어설 때까지, 관객들은 익숙하지 않은 것을 기대하고 상상하며 떨었다. 그 복합적인 감정이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졌다. 스케치를 남긴 이유는, 이 스케치만큼 <꾿빠이, 이상>을 일상적으로 표현하기 좋은 예가 더 없기 때문이다.

 

 

혼란의 기대작 <꾿빠이, 이상>은 김연수 작가의 소설 <꾿빠이, 이상>을 원작으로 하는 가무극이다. 김연수 작가가 <꾿빠이, 이상>에서 이상이라는 제재를 통하여 진실과 거짓 간의 불분명한 경계에 대해 이야기하였다면, 가무극 <꾿빠이, 이상> 진실과 거짓 간의 불분명한 경계를 통하여 이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연수 작가는 인터뷰에서 둘 사이의 차이를 이러한 언어로 표현한다. 나는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글을 썼고, 오세혁 작가는 안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글을 썼다.”

 

 

비록 두 작품의 제재는 다르지만, 공통된 메시지는 존재한다. 불분명한 경계. 하나로 표현할 수 없는 정체성. 이 메시지는 가무극 <꾿빠이, 이상>을 관통한다. 어떤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든, 모든 내용은 이 메시지로 수렴한다. 그런 점에서 <꾿빠이, 이상>은 처음 다가오는 것보다 어렵지는 않은 작품이다.

 

 

<꾿빠이, 이상>의 메시지가 신선하고 기분 좋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받쳐주는 연출에 근거한다. 오루피나 연출은 인터뷰에서 김승희 시인의 언어를 빌린다.

“(이상은) ‘하이브리드 예술가이자 언제나 경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지적 노마드였다그는 소설을 시처럼, 수필을 시처럼, 시를 의료 진단서처럼 썼고, 시에 그림을, 기하학적 도형을, 숫자판을, 인쇄기호 등을 도입해 타이포그래피 등을 실험했다.”

오 연출은 이상의 하이브리드 예술가적 측면 혹은 이상의 콜라주성에 주목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이를 통해 <꾿빠이, 이상>의 주제와 표현방식을 잇는다. 다양한 시선을 한 몸에 담고 있는 시인 이상, //극이라는 총체적 장르, 그리고 극과 관객을 이어주는 이머시브 씨어터. 이 모든 표현 방식들이 A도 아니고 B도 아닌 <꾿빠이, 이상>, 그리고 그 의미를 창조한다.

 

 

 

왜 이상의 얼굴인가

 

이상의 시에서는 '' '모더니티'에 대한 강렬한 고민이 엿보인다. 이상평전을 쓴 고은 시인도, 21세기의 시선으로 이상을 다시 점검하는 글을 쓴 김승희 시인도 이상의 나르시시즘과 자아 탐구에 대해 이야기를 남긴 바 있다. 이상은 ''에 대한 고민을 가장 치열하게 한 한국 근대 시인 중 한 명일 것이다. 이상은 시의 많은 표현을 '비일상적'으로 하여 ''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였다. 같은 일상도 다른 시선에서 보아 전근대에서 탈주하려 하였다. '모던함'을 등에 지려 하였다.

 

그런 이상이기에 내 얼굴에 대해 고심하며 내 얼굴을 상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극에서 얼굴이라는 단어는 많은 단어들과 호환되고 병치된다. 존재, 역할, 이데올로기, 관계, 행동 등. 수많은 단어들은 모여 겹이 쌓이고 정체성 혹은 얼굴이라는 단어가 된다. 모여서 가 된다. ‘를 몸에 체()화한 얼굴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끊임없이 얼굴을 쫓는다. 그리고 얼굴에 대해 고민하고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상이 전근대에서 근대로 향했듯, 현세상은 모더니즘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향했다. 더 이상 하나의 얼굴이 존재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하나의 는 존재할 수 없다. ‘를 바라보는 시선들은 다양하고 그 시선 끝에서 탄생하는 의 거울은 의 존재를 구성한다. ‘의 역할 역시 다양하고 그 모든 역할은 를 이룬다. 수많은 나. 어제의 나, 오늘의 나. 이쪽의 나, 저쪽의 나. 수많은 들은 매일 싸우고 이야기하며 라는 존재를 만든다. 수많은 가 충돌하니 복잡하고 모호할 수밖에.

 

저에게 모호함이란, 취향도 아니고 선택도 아니고 존재 그 자체였어요.

 

피터주는 이야기한다. 자신은 이상의 복잡하고 모호하며 규정되어있지 않고 구분되어있지 않은 시가 자신이 속한 세계와 같아서 끌렸다고. 자신의 존재가 모호했기 때문에 명확함을 요구하는 모든 것들이 폭력적으로 여겨졌다고. 명확한 얼굴을 요구하는 것은 수많은 의 얼굴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다.  들이 모두 기에 하나의 는 몰이해일 수밖에 없고 에 대한 몰이해의 강요는 폭력에 진배없다.

 

얼굴 찾기의 여정 끝, 혹은 피터주와의 대화 끝에 이상은 말한다. 무수한 자신의 얼굴들을 보며 나는 점점 나를 모르는 상태가 된다며,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를 모르면 모를수록 나는 점점 더 유쾌해져 간다며 그리 말한다. 이는 자신을 모르면 모를수록 에 대한 이해에 가까워지기 때문일 것이리라. 하나의 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환상이다. 나에 대해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은 오히려 나를 이해하기 위한 비상의 시작이다.

 

그 순간, 무대위 인물들과 관객들은 이제껏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는다. 이상의 분신들인 오감도의 난장 속, 이 하나의 제의에서 그들은 하나의 얼굴, 마스크를 벗고 이상에 대한 단일한 이해를 벗는다. 이상의 텍스트는 갈기갈기 찢겨 단일한 , 종이에서 벗어 훨훨 허공을 난다. 이상은 얼굴들과 춤을 춘다. 하나의 스타일로 단정 지어지지 않는 온갖 유쾌하고 괴상한 모양새로. 하나가 아닌 다양함의 합, 그의 시가 품고 있는 괴상함, 그로테스크. 형식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단일한 얼굴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그 해방을 만끽하듯, 이상과 인물들 그리고 관객들은 미샤 엘만의 노래를 함께 어우러져 듣는다. 데포르마숀. 하나의 스타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음악. 이상이 사랑받는 이유이다.

 

 

 

이머시브 가무극

 

<꾿빠이, 이상>은 위의 주제를 전하기 위해 가무극과 이머시브 극을 차용한다.

 

서울예술단의 브랜드 가무극은 음악()과 춤()와 극()을 혼합한 총체극이다. 또한 서구의 극문법 뮤지컬과 한국의 전통적인 극 표현 및 제재와 정서를 결합한 브랜드이기도 하다. <꾿빠이, 이상>에서 이상을 하나의 얼굴로 정의할 수 없듯, 서울예술단의 가무극 역시 하나의 정의로 설명하기 어렵다. 뮤지컬의 문법을 기대하고 온 이에게는 다채로운 무용을, 무용극의 문법을 기대하고 온 이에게는 뮤지컬의 극적 장면을 보인다. 이러한 혼합적 장르 특성 탓에 혼란스러워 하는 후기도 종종 인터넷에 게재된다. 이는 서울예술단이 수 년 간 단체의 극 정체성에 대해 질문 받는 이유이자 단체 스스로도 고심하고 있는 지점이다. 허나 이 혼합성은 <꾿빠이, 이상>과 만나 되레 주제를 효과적으로 풀어낸다. 그야말로 서울예술단만이 할 수 있는 극이라는 평을 받는 이유이다.

 

이 콜라주같은 장르 가무극이 이머시브 형태를 만난다. 이머시브 (immersive). 말 그대로 관객을 극 안으로 끌어들이는 극 형태이다. 관객들은 가면을 쓰고 극의 일부가 된다. 로비에 들어섰다고 생각하지만, 극장과 로비의 경계가 없는 그 혼돈의 장소에서 극은 바로 시작된다. 그리고 가면을 써 극에 녹아든다. 가면을 쓴 채 이상에 대해 그는 누구였을지 웅성이며 소리 내어 이야기한다. 이상의 단일한 얼굴을 쓴다. 그리고 내부로 들어가 이상의 집합적 정체성 혹은 얼굴의 일부가 된다. 관객이 하는 이야기는 모두 이상의 일부이기에 그들은 집합적 정체성을 만듦과 동시에 그 속에 있게 된다. 삼면 무대 자유석에 앉아 그들은 어느 방향, 어느 시선을 정하지 않은 채 자유로이 이상의 얼굴 찾는 여정을 목격하고 증명한다. 하나가 아닌 모두 다른 맛의 양갱을 먹고 소화하며 이상의 얼굴 찾기 과정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모두 가면을 벗으며 이상의 깨달음을 함께 맛본다. 극이 끝나서도, 극장과 로비에서 나누는 극의 후기와 즉각적 반응들은 극 후의 또 다른 극을 이어간다. 각자 다른 감상이 모여 하나의 <꾿빠이, 이상>이 되기에 극은 끝났어도 살아간다.

 

 

 

나가며

 

이상의 얼굴 찾기. “이상은 누구였을까하는 고민은 이제 너무 낡은 고민이 되어버렸다. 이상이 19세기에서 20세기를 좇았듯, <꾿빠이, 이상> 20세기의 이상에서 21세기의 메시지를 좇는다. 그의 얼굴은 찾을 수 없다. 혹은 모든 얼굴이 그의 얼굴이다. 모든 얼굴이 콜라주되어 그의 얼굴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마치 여러 시선의 얼굴을 평면으로 그려내어 그로테스크한 큐비즘 작품처럼 이상의 시는 알 길 없고 복잡하고 모호하며 그로테스크하다. 그리고 <꾿빠이, 이상> 역시 복잡하고 모호하며 어느 한 관객이 말하듯 과도해보일지 모른다. 여러 장르의 표현법을 섞어놓아 작품을 걸어놓은 전시회처럼 보일지 모른다.

 

허나 <꾿빠이, 이상>은 단지 이상에게 외치는 복잡하고 모호한 꾿빠이로 끝나지 않는다. 극에 참여한 얼굴들이, 관객들이 있는 한 극은 이어진다. 그들의 이야기로 극은 이어진다. 극속 오감도 난장에서 표현한 이상의 펄떡이는 심장처럼 잦아들다 또 뛰고, 또 뛸 것이다. 웅성거리는 관객의 감상 속에서 <꾿빠이, 이상>은 하나의 이상이 아니라 이상이라는 거대한 이야깃거리로 남는다. 그렇기에, 그야말로 고은 시인의 말대로, 혹은 <꾿빠이, 이상>의 대사대로 이상은 시인이 아니라 사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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